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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덕과 복덕에 어떤 차이가 있는가를 알기 위해 달마대사와 양무제의 이야기

마음공부

by 수자령천도업장소멸 소원성취불교기도발원문 2023. 11. 27.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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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덕과 복덕

공덕과 복덕에 어떤 차이가 있는가를 알기 위해 달마대사와 양무제의 이야기에서 시작해 봅니다.

어느 날 양무제가 달마대사(達磨大師)에게 
\"나는 불교를 위해서 수많은 일을 하였는데, 그 공덕이 얼마나 되겠습니까?\"하고 물으니, 
달마대사는 \"아무런 공덕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이에 양무제는 크게 실망하고 불쾌하게 여겨 달마대사를 양나라 밖으로 내 쫓아 버렸습니다. 

달마대사가 양무제에게 \"공덕이 없다.\"고 한 까닭은 절을 짓고, 보시하고, 공양 한 것은 단지 복을 짓는 것일 뿐, 공덕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복덕과 공덕은 행하는 마음의 차이이므로 내가 있는 마음으로 행行하였는가?
(유아(有我), 아상(我相), 유심(有心), 색(色): 차별, 분별) 
아니면 내가 없는 마음으로 행하였는가?
(무아(無我), 무심(無心), 무념(無念), 공(空) : 무차별, 무분별)

자문해 보기 바랍니다.

양무제가 행한 것은 내가 있는 마음(구하는 마음, 공치사, 대가를 바라는 마음, 이익을 바라는 마음 등등)으로 하였으므로 달마대사에게 공덕의 크기를 물어 본 것이며, 내가 없는 마음(구하는 마음, 공치사, 대가를 바라는 마음, 이익을 바라는 마음 등등이 없는 마음)으로 행하였다면, 하였다는 마음 없이 한 것이므로, 공덕은 아예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달마대사에게 물어볼 까닭이 없습니다.

그래서 \"선행을 하고도 행하였다는 생각을 일으키지 마라(무주상보시하라, 머무는 바 없이 하라)\", 착한생각(선업)이든 악한생각(죄업, 악업)이든 업의 고리가 되며 업은 윤회의 씨앗이 되니, 악한 생각보다는 선한생각을, 선한 생각보다도 악한생각이든 선한생각이든 생각하지 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생각을 하지 않으면 안 되나 하겠지만 생각은 내가 하고 싶다고 내가 안하고 싶다고 되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인연화합, 인연생기에 의해서 저절로 생겨납니다.

멍 때리면 되지 않냐 하겠지만 그것은 깨어있는 것이 아닙니다.

너무 생각이 많고 심하여 과열된 컴퓨터가 셧다운 되듯 뇌를 쉬게 해주는 명목으로 간혹 멍 때리는 것이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만 '멍 때리는' 행위 자체가 생각을 멈추는 것이라고 하기엔 생각이란 본래 끊임없이 일어납니다.(의미 전달을 위해 원문을 수정하여 재작성하였습니다.)

다시 복덕과 공덕으로 돌아가서,

복덕은 복 福을 쌓는 일로 어떤 선행이건 남에게 선행을 베풀면 그 행위로 인하여 인과법에 의해서 다음에 반드시 그 열매인 선업善業의 과보를 받게 되는 것이 복덕福德이며, 이러한 복덕은 유루적(有漏的, 새는 것)인 것이어서 인연이 다하면 그 복이 끝이 나는 것이 바로 '복덕의 실체'입니다.

복을 지은 만큼 되돌려 받는 자업자득自業自得의 이치와 같으므로, 다 되돌려 받고 나면 또 다른 복을 지어야 합니다. 그러나 공덕은 돌려받을 일이 없으므로 무한無限합니다.

복덕은 세간의 지혜이기 때문에 항상 업業이 남아 윤회하지만, 공덕은 출세간의 지혜이기 때문에 삼업(몸, 말, 생각으로 짓는 행위)이 청정하여 업이 남지 않으므로, 윤회하지 않습니다.


결국 공덕이란,
무루법(無漏法, 새는 것이 없음)이며, 반야般若의 지혜가 갖추어지고, 일체의 모든 일이 삼업에 따라 청정한 삶이 실행될 때에야 비로소 베풀 수 있는 것입니다.

원하옵건대, 
지금 닦은 이 공덕을 널리 일체 중생에게 돌리어 
나와 더불어 일체중생이 모두 함께 불도를 이루도록 하옵소서.

(원이차공덕 보급어일체 아등여중생 당생극락국 동경무량수 개공성불도)
법화경 화성유품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회향발원을 우리는 늘 관음기도 중 화엄경 약찬게 끝난 후, 금강경독송 후 기도나 수행 끝에 한다고 합니다.

불자들의 '수행'은 늘 공덕을 쌓는 행위에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복덕과 공덕 관련하여 능인선원의 법봉스님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공덕이 어렵습니까?
부처님은 지혜와 복의 양족존(兩足尊, [불교] 두 발을 가진 존재 중에서 가장 높은 이라는 뜻으로, ‘부처’를 높여 이르는 말. 양족(兩足)은 복덕과 지혜, 계(戒)와 정(定), 대원(大願)과 수행을 원만하게 갖추었다는 뜻으로도 풀이된다.)이라 하지 않습니까?
부처님은 지혜가 수승하십니다.
우리 불자들은 복덕을 공덕으로 바꾸는 지혜를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 배우는 것입니다.
복덕은 반드시 공덕은 되지는 않지만 공덕은 반드시 복덕이 됩니다.
자기가 닦은 선근 복덕과 공덕을 나를 포함한 일체중생과 우주 법계에 회향하는 것이 영원히 마르지 않는 복 통장 즉, 공덕 통장을 지니는 것과 같습니다.


                                        
                                    
© hraevv, 출처 Unsplash


<인정 욕구>를 위해 매일 치열한 경쟁을 하는 우리들 모습에서 기쁨도 발견하지만 슬픔, 안타까움, 좌절스러움 등 부정적 감정들도 경험합니다. 굳이 인정 받고 안받고에 연연해 하고 싶지 않아도 먹고 사는 문제가 걸리거나 생존을 좌지우지 하는 상황에서 반드시 쟁취해야 하는 '인정욕구'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내려 놓으라'는 말을 하지만 작금의 여러 사태들을 보면서 세뇌 당하는 내용은 내려놓지 말고 각자 자기 살 궁리 반드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범을 보여야 할 사람들이 자신들을 바라보는 대중들에게 보이는 작태는 내려놓음이 아니라 이렇게 너희도 쟁취하고 체면을 지키며 위선적일지라도 범법을 하면서도 갱생하는 걸로 포장하라는 메시지들이 가득합니다.

인간적 도의는 전통 책에 나오는 문구일 뿐 현실은 어떻게든 상대를 무너뜨리고 너가 살아야 한다는 것으로 읽혀집니다. 살기위해서 뭐든 그럴싸하게 포장하고 팬덤을 만들어야만 생존할 수 있다는 메시지들이 삶을 더 무기력하게 합니다. 진실 따위는 어리석은 자들의 기도문이 되었습니다.

복덕과 공덕에 대해 이야기를 전하는 능인선원의 법봉스님 칼럼에서 오늘의 현실이 가지는 슬픔이 더 크게 다가옵니다.

다시금 문장 하나 가슴에 새기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자등명법등명自燈明法燈明하여 무소의 뿔처럼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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