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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성취기도문]"나무석가모니불!" 혹은 그냥 "불! 불! 불!" 혹은 "붓다!붓다!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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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자령천도업장소멸 소원성취불교기도발원문 2024. 1. 28.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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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성취기도문]"나무석가모니불!" 혹은 그냥 "불! 불! 불!" 혹은 "붓다!붓다!붓다!"

<법화경>에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돌멩이도 없고, 가시나 잡초, 억센 풀도 없는 좋은 밭에 농부가 때맞추어 좋은 씨앗을 뿌렸다. 그 후 농사에 필요한 햇볕과 바람, 비 등도 적당한데, 농부가 그 씨앗을 향해 '너는 싹을 틔우지 마라! 자랄 필요가 없다. 열매를 맺지 마라! 수확이 필요 없다'라고 말한다고 해서, 과연 그 싹이 트지 않겠느냐?"라고 아난다에게 물으셨다. 아난다는 "그렇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그와 같이 부처님들께 쌓았던 공덕은 원하지 않아도 그 과보를 반드시 받게 된다."라고 말씀하셨다. 이처럼 부처님께 쌓는 공덕은 한량이 없다.

과보에는 좋은 과보와 나쁜 과보가 있다. 좋은 결과라고 해도 된다. 

<법화경>에 이런 내용이 나오는가? <법화경>이 맞는지 확인해보면 좋겠다. (원본 펴심) <법화경>이라고 하는데, 티베트말로 <자비흰연꽃경>이라고 되어있다. 한국의 <법화경>에 이 부분의 내용이 나오는가? 아닌가? 

종자를 심고 싹이 나오고 자라서 열매를 수확할 수 있도록 모든 조건을 갖추고서 마지막에 이제 나는 필요 없다고 하면 싹이 없어지는가? "열매가 필요 없으니 싹은 트지 마세요"라고 말해도 조건을 다 갖추면 싹은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반대로 조건을 안 갖추면 빨리 소원성취해달라고 기도해도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부처님을 대상으로 기도하면 원하는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진다기보다는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예를 들면, 아소카 왕이 그렇게 왕으로 태어나 불교를 널리 퍼트리는 큰 공덕을 쌓을 수 있었던 원인(계기)이 무엇인가? 과거 연등부처님 시절에 아소카 왕의 전생이었던 아이가 모래밭에서 놀다가 연등부처님께서 탁발 오시는 것을 보고 장난으로 모래를 부처님 발우에 공양 올린 적이 있었다. 그 공덕으로 아이는 후생에 아소카 왕으로 태어났고, 큰 공덕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부처님은 불가사의한 존재이시다. 우리는 사람의 형상으로 불상을 만들고 부처님이라고 부르지만 범부 중생의 마음으로는 진정한 부처님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쨌든 부처님은 불가사의한 존재이시기에 믿고 공양 올리거나 기도하거나 하면 그 결과도 불가사의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불가사의에 대한 믿음을 원인으로 나타나는 이숙과 또한 불가사의한 것이다. 입으로 부처님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 자체도 어마어마하게 큰 공덕을 짓는 것이라고 한다. 

"나무석가모니불!" 혹은 그냥 "불! 불! 불!" 혹은 "붓다!붓다!붓다!" 라고만 해도 엄청나게 큰 공덕이 있다고 한다. 우리는 공덕이 있다고 하면 바로바로 신통도 얻고, 미래도 보고 과거도 보는 등 다른 사람들에게는 없는 특별한 힘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꼭 그렇지 않다. 한 번만이라도 부처님께 마음으로 "감사합니다"라고 부처님을 향하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도 큰 공덕이 된다. 

우리가 부처님을 제대로 마음으로 상상할 수도 없고 알 수도 없지만, '부처'라는 완전한 깨달음을 얻으신 분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이 지구상에서 '붓다' 혹은 '부처님'이라는 용어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되겠는가? 얼마 되지 않는다. 

굥라라돗린포체께서 <별해탈경>에서 [티베트말] "부처라는 이름만 듣는 것도 이 세상에서는 드물다"라는 구절을 보시고서 처음에는 이해를 못 하셨다고 한다. 왜냐하면 티베트에서는 늘 부처님이라는 말을 듣고 기도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해를 못 한다기보다는 마음속에 와닿지 않았다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나중에 나라(티베트)를 잃고 인도로 망명했다가 미국에 가셨을 때 비로소 마음에 와닿았다고 하셨다. 미국에서는 린포체로서 대우를 받을 수가 없어서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편의점 같은 곳에서 일하셨다고 한다. 

그때야 '아! 내가 스스로 경전을 보거나 기도하지 않으면 주변 환경에서 부처님이라고 불러주는 사람이 없구나'라고 자각하셨다는 것이다. 우리도 이렇게 절에 와서 같이 공부할 때 부처님이라는 말을 듣을 수 있는 것이지 회사에서 일할 때 누가 옆에서 부처님 얘기를 하는가? 

부처님에 관해서 이야기하면 이상하다고 쳐다볼 수가 있어서 불자가 아닌 것처럼 생활해야 한다. 그래서인지 영화배우 중에서도 불자가 많다고는 하는데 연말에 연기대상을 받을 때 "부처님께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진짜 불자인데도 "저는 이 상을 부처님께 바칩니다."라고 수상소감을 밝히는 경우는 없는 것 같다. 반대로 다른 종교에서는 "이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겠습니다."라는 말을 많이 한다. 

아무튼 '부처님'이라는 개념 자체를 듣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엄청나게 큰 공덕이 있다는 것이다. "나무 석가모니불!"이라고 백팔 번을 해도 좋고, 천 번을 해도 좋다. 범어로 "나무 붓다야! 나무 붓다야!"라고 해도 되고, 빨리어를 좋아하면 빨리어로 해도 된다. 어떤 언어든 상관없다. "귀의불! 귀의불!" 해도 된다. 그것도 귀찮으면 그냥"불!불!불!" "붓다!붓다!붓다\"라고 해도 된다. 티베트식으로 "상게!상게!상게!"라고 해도 된다. 어쨌든 마음속으로 부처님을 생각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사람들 중에서도 이렇게 부처님을 기억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고 하는데, 동물이나 벌레들은 부처님을 아예 상상할 수조차 없다. 그런 능력 자체가 없는 것이다.

벌레 얘기가 나와서 부처님의 가피로 벌레가 공덕을 쌓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어떤 벌레가 소똥 위에 앉아있다가 쏟아지는 비에 휩쓸려 내려오면서 우연히 불탑을 한 바퀴 돌았던 공덕으로 출가의 복을 만들었다는 이야기이다. 

-광명진언-
옴 아모가 바이로차나 마하무드라 마니 파드마 즈바라 프라바릍타야 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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