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음악 ■ 1. 삼국시대의 불교음악 ■ 2. 고려시대의 불교음악 ■ 3. 조선시대의 불교음악 ■ 4. 근대, 현대의 불교음악 불교음악은 부처님 성도 후 불교의 개교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여겨지나 부처님 당시 어떤 형태의 음악이 어떻게 불렸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여러 경전에는 음악적 기술과 함께 수많은 악기가 묘사 되어 있으며 부처님은 수행자가 세속적인 기악에 열중하여 수행을 게을리 하는 것은 경계하고 있었으나 부처님께 올리는 음악의 공덕은 인정하고 있다. 이를 미루어 볼 때 불보살을 찬미하는 공양음악으로서의 불교음악이 행해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불교음악이란 불교와 관련된 모든 음악을 말한다. 일상의식 법회의식 재의식과 같은 다양한 불교의식에 쓰이며 확고하게 정착된 의식음악과 공양의 성격을 지닌 음악으로 크게 구분할 수 있다.
불멸 후 제자들에 의해 불경과 계율이 제정되고 불상과 불사리를 안치한 탑의 건립이 성행하면서 의식음악이 형성되었다. 또한 기악 반주가 덧붙여져 점차 의식음악으로서의 틀이 갖추어지기 시작하였다.
불교의 전래와 함께 불교음악은 도입되어 성장 발전하여 우리나라 고유의 불교 음악으로 정착하기에 이르렀다. 여기서는 불교음악의 형성과 발전된 자취를 각 시대 별로 나누어 그 전개과정을 살펴보기로 한다.
1.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의 불교음악 “삼국유사” “대송고승전” “입당구법순례행기” “진감선사 대공탑비문”에 당시의 불교음악을 추측할 수 있는 기록이 남아 있다.
삼국유사에는 염(念), 염불(念佛), 게(偈), 게송(偈頌), 범게(梵偈), 다라니(陀羅尼), 성범(聲梵)등으로 표현된 불교음악과 관련된 기록이 많이 남아 있어 그중 약간을 소개한다.
삼국유사에 경덕왕 19년(760) 4월 초하루 2개의 해가 나란히 나타나서 열흘 동안 사라 지지 않는 이변이 일어났다. 이에 일관이 말하기를 “인연 있는 스님께 청하여 산화 공덕을 지으면 재앙을 물리칠 수 있다.”고 한다.
이 말에 따라 제단을 만들고 왕이 직접 행차하여 지나가는 스님을 기다렸다. 그 때 마침 월명스님이 그 곳을 지나다가 기도문을 부탁받았으나 월명스님은 성범(聲梵)은 알지 못해 결국 성범대신 향가 “도솔가“를 지어 바쳤다고 한다. 또 스님이 어느 날 명주 해변을 가는데 돌연 물고기와 조개들이 바다 가에 나와 스님 앞에 육지와 같이 이어지니 이에 스님이 직접 바다에 들어가 계법으로 염(念)을 하고 나왔다는 기록이 있다.
삼국유사의 기록만으로 염(念)이나 성범(聲梵)이라고 하는 불교음악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 대송고승전에는 원효대사가 독특한 복장을 하고 동발(銅鉢)이라는 악기를 두드리며 춤을 추면서 “대안 대안”하며 소리를 질렀다는 기록이 있다.
입당구법순례행기는 일본의 자각대사(慈覺大師) 원인(圓仁)이 (838~847) 9년 동안 쓴 일기 형식의 견문록이다. 여기에는 산동반도(山東半島)에 건립된 신라의 절인 적산원(赤山院)에서 행해지는 각종불교의식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어 당시의 신라 불교음악과 의식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적산원에서는 강경의식(講經儀式)과 일일강의식(一日講義式) 송경의식(誦經儀式)과 같은 불교의식이 행해졌으며 불명(佛名), 계향(戒香), 정향(定香), 해탈향계(解脫香戒), 찬탄불(讚歎佛), 회향사(回向詞), 산화시창(散花時唱), 여래묘색신계(如來妙色身偈), 나무십이대원(南無十二大願)과 같은 많은 불교음악이 전문의식승 및 신도에 의해 불려졌다.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 대공탑비문”에는 804년 진감선사가 당나라에 갔다가 범패를 전수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 이 비문에는 진감선사의 범패소리는 금옥 같이 아름다웠고 곡조를 천인들이 듣고 감탄했다고 적고 있다.
2. 고려시대의 불교음악 고려는 불교를 국교로 정하고 국가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연등회와 같은 대규모의 불교행사가 연중 활발히 개최 되었다.
불교음악 또한 불교도래 이후 최고의 발전을 이룩했으리라 추측되며 불교음악과 관련된 기록이 매우 미비하여 고려시대의 불교음악을 알기에는 역부족이다. 다만 고려사에 남아 있는 연등회에 관한 기록을 통해 당시 불교음악의 위상을 추측할 다름이다.
고려사에 의하면 연등회는 정월과 2월 그리고 4월 8일에 주로 설해졌으며 왕륜사 봉은사 법왕사 흥국사 등의 사찰과 궁궐에 백성들이 참가하여 부처님께 공양했으며 사찰 안에서는 악, 가, 무가 혼합된 다양한 종류의 기악과 연주가 베풀어 졌는데 그 규모가 매우 컸다고 한다.
연등회 때는 왕이 궁중에서 모든 의식을 차린 후 신하를 거느리고 절로 가는데 절에서는 왕을 법당에 모셔 독경의식을 한다. 그런 다음 절 앞마당에 괘불을 내걸고 대중 앞에서 각종악기 연주와 함께 독경을 시작하면 일반 대중이 모여들고, 광대놀이와 같은 공연과 각종놀이가 펼쳐진다.
고려의 연등회는 오늘의 부처님 오신날과 같이 온 나라가 축제분위기로 일색이 된다. 고려시대는 정토신앙이 매우 성했으며 관무량수경의 내용이 상세히 묘사된 관경변상도에는 보살들이 당비파, 행고, 장고, 횡적, 피리, 생황, 박판, 소, 등과 같은 다양한 악기를 연주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3. 조선시대의 불교음악 조선시대에는 억불정책으로 인해 길고도 혹독한 탄압의 시대를 맞게 된다. 그러나 한 때에는 간경도감이 설치되어 불경이 간행되었고 승과가 설치되어 불교 흥성의 시기도 있기는 했으나 그것은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었다. 이러한 상황은 귀족불교로 까지 불렸던 불교가 기층민중문화와 습합하여 새로운 불교문화를 형성해 가는 계기가 되었다.
이에 불교음악도 점차 기층민중음악과 교류, 융합해 가는 경향을 띠게 된다. 김수온의 “사리영응기”에는 세종 31년(1449) 7월부터 불사가 시작되어 11월에 궐내에서 제 의식을 행하고 12월에는 불상을 봉안하였으며, 다음 해 6월에 낙성식이 있었는데 그 때에 불교음악이 성대하게 연행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는 세종대왕이 낙성식에 사용할 불교음악을 만들게 된 동기와 곡명 그리고 가사가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세종대왕이 직접 창작한 불교 곡은 앙홍자지 곡(仰鴻慈之曲), 발 대원지곡(發大願之曲), 융 선도지곡(隆善道之曲), 묘 인연지곡(妙因緣之曲), 포 법운지곡(布法雲之曲), 연 감로지곡(演甘露之曲), 의 정혜지곡(依定慧之曲)등이며 그 가사는 귀의삼보, 찬법신, 찬보신, 찬화신, 찬약사, 찬미타, 찬삼승, 찬팔부, 희명자등 9장으로 되어 있다. 그 가사의 내용을 살펴보면 불보살을 찬탄하고 그 공덕으로 성현의 명복을 기원하고 있다.
이 때 행해진 의식에는 정동발, 소동발, 철박판, 특종, 특경, 편경, 편종, 방향, 가야금, 당비파, 월금, 해금, 퉁소, 소고, 장구 등 많은 악기가 사용되었으며 45명의 악공이 연주하였다. 그 외에 죽간자가 2명, 창자가 10명 등 이 의식에 참가한 인원은 총 67명으로 악, 가, 무 로 편성된 종합예술의 성격을 띤다.
이와 같은 큰 행사에는 불교음악 뿐 만 아니라 춤과 노래가 곁들어진 대공연이 펼쳐졌다. 감로탱화에서 불교음악을 연주하는 모습을 볼 수 가 있다.
감로탱화는 대웅전의 좌우벽면에 설치하거나 명부전 또는 지장전에 설치한 뒤 영가의 위패를 봉안하고 영가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하단신앙으로 조상숭배신앙 혹은 영혼숭배신앙과 관계가 깊다.
감로탱은 상 중 하 단의 3단계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는데 상단에는 중앙에 7여래를 모셨고 그 좌우에 수많은 천녀들에 둘려 싸여 연을 타고 내려오는 인로왕보살과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의 협시를 받은 아미타여래가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중단에는 성대한 단이 설치되고 스님과 신도들에 의한 영가천도 의식이 진행되고 있는데 거기에는 범패가 불리고 나비춤 법고춤 바라춤 소금춤 등 화려한 내용의 공연이 설해지고 있다, 중단의 불교의식에는 많은 악기가 등장하는데 경자, 소금, 요령, 법고, 나각, 나발, 바라, 태징, 태평소, 장고, 등 10 여종에 이른다.
감로탱화 중단의 불교의식 장면은 현재 불교의식 내용과 거의 유사하여 조선시대에 이미 현재의 영산재와 같은 재의식의 형태가 어느 정도 완성되었다고 보인다. 그리고 하단의 고혼, 지옥상, 아귀상 싸움장면, 해산 또는 질병에 의한 고통 등 등 육도윤회(六道輪廻)의 업(業)이 현실생활에 비유 묘사돼 있다. 범패가 리듬에 맞추어 바라춤, 법고춤, 소금춤과 같은 의식무가 전개되고 나발과 태평소를 부르며 재단으로 향하는 스님의 행렬이 오늘 날과 유사하다.
조선후기에 이르러서는 여러 의식집이 편찬되었는데 여기에는 당시 범패스님들의 계보와 의식 절차 그리고 범패의 사설 등이 상세히 기록돼 있다. 오늘 날에 전하는 범음 집으로는 산보범음집(刪補梵音集)(1713)과 대휘화상이 저술한 범음종보(梵音宗譜)(1748) 백파 스님이 편술한 작법귀감(作法龜鑑)(1826) 그 밖에 동음집(범패악보)이 전하다.
4. 근대 불교음악 조선시대는 유교의 대세로 쇠퇴의 길을 걸어온 불교는 근대로 접어들면서 서양종교의 전파와 일본의 제 종파불교의 유입으로 전기를 맞게 된다. 스님들의 도성출입이 가능해지고 불교중흥의 필요성에 대한 현실인식이 점차 확대되면서 각 사찰산하에 근대학교가 창설되어 많은 인재를 배출하였다. 그리고 보다 실질적인 개혁을 도모하기위해 일본불교에 유학생을 보내고 또 시찰단을 파견하고 근대불교를 구축하기위하여 다각적인 노력을 하였다.
이러한 시대적 상항 속에서 불교포교와 도제교육에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어 의식에 서양음악을 도입하기에 이르렀고 도제교육과 사찰운영이 일본불교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1911년에 본말사법이 제정되고 전통불교의식행사가 전면 금지되고 오선보로 편찬 작곡된 찬불가가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현대 근대의 알려진 찬불가들은 권상로 조학유 백용성, 등 스님들에 의해 편찬 되었다.
퇴경 권상로 스님의 찬불가집 1879년 문경에서 출생하였으며 운달산 김룡사 스님이시다. 불교교학분야의 제일인자 격이며 동국대학교 초대총장을 역임했고 세기에 희유한 석학으로 국문학 역사학에도 여러 저서를 남겼다. 찬불가의 작사는 퇴경스님의 자작이며 작곡은 당시의 창가나 찬송가 일본의 찬불가의 곡을 차용한 것이 아닌가 의문시된다. 찬불가, 부모은중경의 열 가지 은혜가, 성탄경축가, 신불가, 성도가, 열반가, 학도권면가, 등이 있다.
조학유(曺學乳) 스님의 찬불가 해인사 스님으로 생몰년월일 미상이다. 1914년 불교유학생으로 진언종풍산대학(현 大正大學校) 을 1919년에 졸업하고 귀국했다. 귀국 후 불교관계교무의 요직을 두루 거치며 집필 및 포교관계에 종사했다. 스님의 찬불가집에는 편집의 동기와 목적 찬불가 창작에 따른 간절한 소망 등이 상세하게 기록 돼있다. “불교“에 게재된 24곡은 다음과 같다.
백용성 스님의 찬불가 스님은 (1864~1940)전남 남원에서 태어나사 16세에 해인사로 출가했으며, 저서로는 “선문요지”가 있으며 1914년에 선학원을 세웠다. 1919년 3,1독립운동에 참가 1년6개월의 옥고를 치루었고 새로운 불교운동을 전개했으며 불교일요학교를 설치하고 아동교화를 위해 찬불가를 작곡하였다. “대각교 의식”에서 “왕생가“ ”권세가” “대각교가” \"세계기시가“ ”중생기시가“ “중생상속가” “입산가”등 7곡의 찬불가가 수록 돼 있다.
김태흡 대은 스님의 찬불가 1899년 강화도에서 출생하고 법주사 강원 대교과 졸업, 일본대학교 종교학과 졸업 대승사 법주사 조실, 중앙포교사, 중앙불교전문학교 교수, 불교시보주간, 달마회 지도법사, 동국역경원 역경위원, 팔만대장경교역, 관음경강화, 석가여래일대기, 신앙의 등불, 구도의 길등의 저술이 있으며, “오도가”, “월인찬불가”, “목련지효가” 등의 작사가 전함.
현대불교음악 우리나라 불교음악은 범패를 중심으로 한 전통불교의 의식음악과 새롭게 창작발표 된 다양한 장르의 찬불가가 서로 공존하면서 발전하여 왔다.
특히 1911년부터 전 사찰의 불교의식 연행이 금지되면서 거의 사라질 위기에 있던 범패와 작법이 태고종을 중심으로 다시 면모를 찾아가게 되었다. 그리고 1973년에는 범패가 중요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불교의식음악의 재인식이 활발히 진행 되고 있음은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현대의 불교의식음악은 사찰내에서 뿐만 아니라 공연무대로까지 확대되어 국내는 물론이고 세계 각국에서 활발하게 공연되어 절찬을 받는 등 음악을 통한 포교가 커다란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범패(梵唄) 범(梵)은 천상의 소리를 말하며 패(唄)는 산스크리트어로 찬탄의 뜻이다. 범패는 불교의식 때 불리는 모든 염불을 말하는데 좁은 의미로는 전문의식승이 부르는 안채비소리, 바깥채비소리로 화청만을 의미 한다. 주로 영산재, 수륙재, 생전예수재 49재 등 재를 올릴 때 부르는 노래이다.
범패는 가곡, 판소리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성악곡의 하나로 우리음악의 뿌리가 되고 있다. 다른 음악과 달라 범패는 장단과 화성이 없는 단성시율로 구성되며 일정한 악보가 없이 오롯이 구음으로만 전해지기 때문에 전수에 어려움이 있다.
배우는데 시간도 많이 소요되며 그 과정도 스승과 제자의 일대일 학습을 통해서만 익혀져 왔다. 수행과 깨달음을 구하듯이 범패를 통해 미묘하고도 찬연한 부처님의 음성을 담아내는 것이 범패승들의 수행 적 과제였다.
즉 불교의 가르침을 소리로 그려내는 매우 어려운 수행의 한 과제이다. 동시에 신구의(身口意)를 통해 부처님의 말씀을 이루어 내는 것 그것이 범패의 기능이며 불교적 의미인 것이다. 또한 청각 및 시각적인 장엄의식을 통해 심신을 더욱 심화 시킨다는 점에서 교리적 기능도 간과할 수 없는 덕목이다.
범패는 우리나라 고유의 불교의식 음악으로 발전하였다고 할 수 있다.
1) 안채비 권공하는 이유가 담겨있는 4.6체 형식이나 산문형식의 문장으로 구성돼 있다. 이는 불경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본사의 스님이나 법주가 부른다. 일반적 염불이 여기에 해당되는데 유치성, 착어성, 편게성, 게탁성, 청사성, 소성, 축원성으로 나눌 수 있다.
2) 바깥채비 바깥채비는 홋소리, 반짓소리, 짓소리로 구분한다. 홋소리는 오언사구(五言四句), 칠언사구 등 한문으로 된 사설과 범어로 된 진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독창 또는 대중창으로 부른다. 반짓소리는 일부만 짓소리로 나머지 소리는 홋소리나 평염불로 불린다. 짓소리는 홋소리에 비해 소리가 유연 청화하여 게송으로 되어 있지만 연주시간이 길고 장엄하다. 과거는 72종이었다고 하나 현재는 15곡 정도에 불과 하다.
3) 화청 화청과 회심곡으로 나눌 수 있으며 사설형식의 가사를 개개인의 독특한 음성으로 부르기 때문에 일반인도 그 뜻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화청의 내용은 불보살을 청하여 그 공덕을 찬탄하며 재를 지내는 신도의 소원 성취를 기원하거나 영가의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의식적 내용으로 되어 있다.
화청의 종류에는 상단축원화청, 지장축원화청, 팔상화청, 육갑화청, 고사선염불, 부모은중경청등이 있으며 축원화청은 북과 태징반주에 독창으로 한다. 회심곡은 인간의 권선징악과 회로애락 그리고 생로병사와 관련된 내용으로 구성된 것과 부모은중경 중 덕담 부분을 뽑아서 한글가사로 만든 것이 있으며 축원화청은 부르기 전에 독창으로 부른다.
회심곡의 종류는 다양하여 그 중 몇 가지 만 소개한다. 왕생가, 열반가, 몽환가, 경축가, 자책가. 시왕가. 신불가, 성도가, 시왕지옥가, 백발가, 참선곡, 권선곡, 별회심곡 등이 있다.
광복 이후의 찬불가
김정묵 스님의 찬불가
-제1부 삼보편 제2부 의식편 제3부 집단편 -제4부 어린이편 -제4부로 나누어 132곡이 수록돼 있다.
정운문 스님의 찬불가 집 1928년 전남 장성 출생 1944년 망월사에서 득도 대각사 서울연화 어린이회 와 개운사 보리수 어린이회 창립 불교 동요집(1964), 행복의 문(1979), 어린이 찬불가(1985), 불교 성가집(1983) 위와 같은 전국적인 찬불가 제작 및 보급에도 불구하고 당시 불교계는 서양음악찬불가를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강해 정신적 경제적 어려움이 컸던 것으로 여겨진다.
1970년대 이 후의 찬불가 찬불가는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점차 관심을 받게 되고 인식이 새로워 져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맞이했다. 조계종 주최 찬불가 공모전을 통해 당선된 최영철의 “삼귀의”와 “사홍서원”은 이러한 배경의 산물이다. 이 두곡은 의식 음악으로 정착하여 그 위치를 확고히 하고 있다. 불교합창단이 창단되면서 찬불가를 도입한 새로운 양식의 법회풍토를 개척하기 시작 하였다.
그 대표적인 예가 1978년에 광덕 스님이 창단한 불광법회의 바라밀다합창단이다. 그 이후 찬불가는 많은 작사 작곡의 열광적인 신불자에 의해 여러 곡이 탄생했으며 각처의 포교당과 사찰에는 합창단이 조직되어 활발하게 활동은 본궤도에 올랐다.
레코드, 카세트, CD 가 제작 되어 불교대중화 운동에 커다란 공헌을 하고 있으며 불교TV의 출현으로 신라와 고려시대의 영광을 되찾고 있다. 1980년대 후 찬불가는 작사 작곡가들의 끊임없는 창작활동은 물론 신진 작가들이 활발한 활동으로 전성기를 맞고 있다.
또한 전국 각 사찰에는 불교합창단이 창단되고 불교음악공연이 빈번이 개최되면서 찬불가는 대중화 되고 있다. 경전 말씀을 노랫말로 지어 작곡한 국악 교성 곡으로 찬불가의 새로운 효시가 되었다.
이러한 찬불가 발전은 1990년 대 불교방송국의 개국과 함께 찬불가 제작 사업으로 이어져 불교음악의 질적 양적으로 큰 성과를 거두게 되었다. 현재는 실내악곡, 과현악곡 무용극, 불교가요, 불교 동요, 국악 풍 찬불가 등 다양한 장르의 곡들이 끊임없이 발표되어 불교음악을 더욱 풍부하게 하고 있다.